오늘 거울 속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인생의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오늘 거울 속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안녕하세요,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 삶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늘봄아저씨'입니다. 어느덧 창밖의 풍경이 완연한 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네요. 만물이 소생하는 이 좋은 계절,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보이지 않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있나요?

저는 오늘 아침 세수를 하려다, 문득 거울 속의 저와 아주 가만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아 깊어진 눈가 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가, 불현듯 가슴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해묵은 질문 하나가 툭 하고 튀어 올랐습니다.

"늘봄, 너는 지금 네 인생의 조타수를 잡은 주인으로 살고 있니,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 나그네니?"
거울 속 평온한 나 자신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어르신의 따뜻한 수채화 일러스트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마음 건강을 위한 한국심리학회 공식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참 쉬운 일상적인 질문 같으면서도, 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덜 닦인 물기를 훔치며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오늘은 늘봄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빛바랜 일기장 같은 이야기를 여러분과 도란도란 나눠보려 합니다.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두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35년 전, 가슴에 박힌 비수 같은 그 문장

사연은 제가 사회생활이라는 거칠고 큰 바다에 막 첫발을 내디뎠던 그 푸릇푸릇하던 35년 전 시절로 단숨에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상 모든 것이 설레고 동시에 두려웠던 그날, 함께 입사했던 한 동기 친구가 제 낡은 비망록 첫 장에 먹먹하게 남겨준 한 줄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너무 일찍 제 곁을 떠나버려 이젠 눈 감아도 목소리조차 가물가물해진 친구지만, 그 친구가 연필심을 꾹꾹 눌러 써주었던 삐뚤빼뚤한 글씨만은 세월이 흘러도 제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져 살아 숨 쉽니다.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인생의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철없던 그때는 그저 젊은 날의 호기로운 객기가 묻어나는 격언이라며 호탕하게 웃어넘겼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매서운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을 때마다, 그리고 평생을 기대어 살았던 공직의 단단한 울타리를 벗어나 '퇴직'이라는 서늘한 절벽 앞에 홀로 서게 되었을 때, 이 질문은 불현듯 죽은 친구의 준엄한 목소리가 되어 제 귓가를 세차게 때렸습니다.

🌿 인생의 두 번째 봄 : 역할의 주인에서 존재의 주인으로

  • 1. 무거운 '역할'의 외투를 벗어두세요 평생 짊어지고 온 직장, 부모라는 무거운 책임감의 겉옷을 이제는 잠시 옷걸이에 걸어두셔도 괜찮습니다.
  • 2. '누구의 무엇'이 아닌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수식어가 다 떨어져 나간 뒤에 남은,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에만 온전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 3. 오직 당신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으로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잣대가 아닌, 내 영혼이 기뻐하고 가슴이 뛰는 그 방향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누군가의 소중한 역할'이라는 가짜 옷을 벗어 던지며

우리는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의 든든한 남편으로, 희생하는 아내로, 또 직장이라는 조직의 톱니바퀴이자 핵심 인물로 말입니다. 우리는 그 수많은 '역할'들의 완벽한 주인으로 남기 위해 그야말로 뼈를 깎듯 온 힘을 다해 청춘을 바쳤지요.

하지만 정년을 맞이하고, 견고하다 믿었던 직장과 직무라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 던진 첫날 아침, 문득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 반평생 동안 주인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것은 온전하고 벌거벗은 '나 자신'이 아니라, 사회가 내어준 알량한 '책임'과 '직분'이었다는 서글픈 사실을요.

  • 명함에 박힌 직함이 증발하자, 거울 속엔 갈 곳을 잃고 눈만 껌뻑이는 초라한 이방인만 서 있었습니다.
  • 평생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희생했지만, 정작 내 영혼이 무슨 음식을 제일 행복하게 먹는지, 어떤 음악에 가슴이 뛰는지는 완전히 잊은 채 늙어버렸습니다.
  • 남들이 정해놓은 화려한 성공의 잣대에만 내 몸집을 우겨 넣느라, 정작 나 자신의 길 위에서는 손님처럼, 나그네처럼 밖으로만 겉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남은 생을 좀먹는 그 기나긴 방황의 사슬을 거침없이 끊어내려 합니다. 타인이 그어놓은 한계선이나 제가 스스로 만들었던 고정관념이라는 서늘한 감옥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와, 내 남은 삶의 방향타를 오직 '나의 굳건한 의지'로 조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단단한 결심을 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무거운 나그네의 보따리를 내려놓고 내 집의 가장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두 다리 뻗고 앉은 기분입니다.

오늘 밤, 거울 속의 당신에게 단 한 번만 정직하게 물어봐 주세요

퇴직 후 펼쳐진 인생 2막이라는 낯선 새 길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화려한 펀드 재테크 비법이나 거창한 세계여행 계획표가 아닙니다. 바로 벌거벗은 내 영혼을 향한 티 없이 '정직한 질문' 단 하나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소중하고 귀한 여러분, 화면을 끄시기 전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세 가지만 물어봐 주시겠어요?

"나는 오늘 내 슬픔과 기쁨의 온전한 주인인가?"
"나는 내게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을 통제하는 주인인가?"
"나는 오늘 내 입술로 뱉어낸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의 당당한 주인인가?"


이 세 가지 질문 앞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웃으며 "예"라고 소리 내어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낡고 헤진 나그네의 무거운 외투를 아궁이에 던져 버리고,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진짜 주인이 되어 남은 날들을 축제처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늘봄아저씨가 드리는 마음 챙김 (Q&A)

Q. 지금 내가 사는 게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건지 나그네로 끌려다니는 건지 도저히 헷갈립니다. 어떻게 칼같이 구분할 수 있을까요?

A. 아이고, 너무 심각하고 철학적으로 어렵게 들어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쭉 필름처럼 돌려보세요. 오늘 내가 '내 가슴이 기뻐서, 정말 하고 싶어서' 한 일이 많았는지, 아니면 오로지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서' 끌려다닌 고욕이 많았는지 가늠해 보는 겁니다. 내 의지로 산책을 고르고, 내 기쁨으로 꽃에 물을 준 소박한 일들로 하루를 채우셨다면, 당신은 이미 영혼의 훌륭한 주인이십니다.

Q. 당당하게 내 뜻대로 주인처럼 살고 싶다고 머리로는 다짐하는데, 아침에 눈만 뜨면 자꾸 설명 못 할 먹먹한 공허함이 밀려와 한숨이 납니다.

A. 당황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그것은 내 평생의 뼈와 살 같았던 직장인, 가장이라는 두꺼운 '역할'의 옷이 한순간에 홀연히 벗겨지면서 등짝에 스미는 아주 자연스러운 바람 구멍이랍니다. 그 일시적인 마음의 구멍을 세상의 자극적인 오락이나 타인의 형식적인 칭찬으로 대충 때우려 하지 마시고, 흙을 만지는 취미, 길고양이 밥 주기 같은 내가 진심으로 충만해지는 소소한 기쁨으로 한 땀 한 땀 따뜻하게 메워가 보십시오.

Q. 나그네의 짐을 내려놓고 진짜 나를 찾고 싶은데, 제 나이가 벌써 칠순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요?

A.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대문을 열고 주인의 방에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데는 나이라는 치사한 유통기한 따위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 보잘것없는 에세이를 읽으시며 내면에서 "아, 나도 이제는 제발 들러리 말고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서보고 싶다"라고 작은 파문이 일어난 치열한 눈빛이 번뜩인 바로 그 첫 순간이, 진정한 은빛 나이의 눈부신 탄생일입니다.

Q. 나그네처럼 살아온 제 지난 삶이 너무 허무하고 후회스러워 우울해집니다.

A. 어르신, 절대 스스로를 탓하지 마십시오. 나그네처럼 헌신하고 희생했던 그 눈물겨운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어르신의 가정과 우리 사회가 이토록 따뜻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날은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가슴에 품으시고, 오직 다가올 내일의 '주인 된 삶'에만 희망의 초점을 맞추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Q. 가족들이 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섭섭해할까 봐 눈치가 보입니다.

A. 진짜 주인이 된다는 것은 가족을 버리거나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마음이 온전하고 충만해져야, 가족들에게 짜증 대신 더 따뜻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줄 수 있습니다. 억지로 희생하는 찌푸린 얼굴보다, 내 길을 걸으며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미소가 자녀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유산임을 잊지 마세요.

거창한 위인전의 맹세가 아니어도 참 좋습니다. "그래, 그동안 자식들 밥값 버느라 나그네처럼 겉돌며 피눈물 흘리며 고생 많았다. 수고했어. 그래서 오늘 점심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골집 팥칼국수를 꼭 사 먹을 거야!" 같은 투박하고 서툰 자신과의 소박한 고백도 눈물 나게 훌륭합니다.

여러분이 거울 속 자신에게 처음으로 용기 내어 건네고 싶은 그 쑥스러운 진심 한마디를, 아래 댓글창에 살며시 속삭이듯 남겨주세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듯 따스한 늘봄아저씨가, 언제나 여러분의 두 번째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가장 든든한 박수와 응원을 아낌없이 퍼올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당당한 디지털 인생 2막을 늘봄아저씨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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